'저스티스 리그' 이래서는 DCEU를 구할 수 없다
DC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시작됐다.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다섯 번째 작품이자, DC 히어로 팀의 첫 크로스오버영화 '저스티스 리그'(원제 Justice League, 11월 15일 개봉, 잭 스나이더 감독). 전작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 잭 스나이더 감독, 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으로 위태롭게 데뷔한 DC 히어로들이 단체로 출격하는 야심작이다. 마블 '어벤져스'(2012, 조스 웨던 감독)와 비교는 이제 그만. 마침내 '수퍼 히어로 완전체'로 돌아온 '저스티스 리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평가를 여기 전한다. 스토리 C+ "전작 '배트맨 대 슈퍼맨'의 경우, 캐릭터에 대한 나의 '팬심'이 과도하게 앞섰던 것 같다. '저스티스 리그'는 다를 것이다. 규모나 재미 면에서 좀 더 멋지고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 기회다." 지난해 6월, 스나이더 감독은 '저스티스 리그' 촬영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록 올 초 비극적인 가족사로 인해 '어벤져스' 1, 2편(2012~2015)의 조스 웨던 감독에게 후반 작업 전체를 넘기고 하차했지만, 전작의 혹평을 설욕하려는 의지는 무척 결연했다. 그가 '저스티스 리그'에서 자신만만하게 내민 카드는 생명을 창조하고 멸망시키는 막강한 힘을 지닌 외계 물질, 마더박스(Motherbox). 새로운 악당 스테픈울프(시아란 힌즈)는 인간·아마존·아틀란티스(수중 세계) 왕국이 각각 보관해 온 세 개의 마더박스를 이용해, 지구를 악의 본거지로 변형시키려 한다. DC 만화 특유의 신화적 세계관에 맞게 사건의 발단과 위기를 거창하게 소개하지만, 갈등이 심화되고 이야기가 끝맺는 과정은 몹시 전형적이고 헐겁다. 마블 영화가 다양한 능력을 갖춘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아기자기한 방식으로 활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저스티스 리그'의 마더박스는 단순히 선악의 전쟁에 불을 지피는 도구로만 활용된다. 이야기의 설득력과 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액션&비주얼 B 경쟁사 마블이 '꽃길'만 걷는 동안에도, DC의 자존심을 지켜 준 자랑거리가 있었다. '다크 나이트' 3부작(2005~2012,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서 이어받은 음울하고 현실적인 분위기, DC 히어로의 신적 능력을 스타일리시하게 담았던 '비주얼리스트' 스나이더 감독의 액션 연출이다. 활공 중에 적을 가격하는 슈퍼맨(헨리 카빌)의 파워풀한 액션, 배트맨(벤 애플렉)의 묵직한 대인 격투, 원더 우먼(갤 가돗)의 미려한 곡예 동작은 스나이더 감독만의 장기였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액션 장면은 꽤 '평범'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나치게 무겁다'는 전작의 혹평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탓에, 영화의 톤뿐만 아니라 액션마저 훨씬 가볍고 캐주얼하게 탄생한 셈. 물을 다스리고,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신규 히어로들의 초능력 역시 잘 두드러지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클라이맥스 장면도 단조로운 액션, 허술한 CG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역부족. 음악감독 정키 XL이 하차한 뒤 대니 엘프먼이 후임자로 나섰지만, 다소 고전적인 스코어는 한스 짐머와 정키 XL이 작업했던 '맨 오브 스틸'(2013, 잭 스나이더 감독)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음악만큼 강렬한 여운이나 무게감은 없다. DCEU만의 '수퍼 파워'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캐릭터 A- '저스티스 리그'는 '7인의 사무라이'(1954,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처럼 각양각색의 영웅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치는 '팀 결성 영화'다. 히어로 팀 '저스티스 리그'로 뭉친 다섯 히어로의 매력은 대체로 준수한 편. 은둔형 자경단에서 팀의 브레인으로 거듭난 배트맨, 솔로 영화 '원더 우먼'(5월 31일 개봉, 패티 젠킨스 감독)의 성공으로 당당히 '센터'를 차지한 홍일점 원더 우먼, 야성적인 매력으로 오프닝을 압도하는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속사포 입담으로 유머를 책임지는 플래시(에즈라 밀러), 영화 속 사건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이보그(레이 피셔) 등…. 문제는 이들의 케미스트리다. 다섯 명의 히어로는 각각 팔색조 같은 개성을 뽐내지만, 기이하게도 그들이 함께 있을 때는 좀체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들이 팀을 결성하는 과정은 무척 두루뭉술하고, 엉성한 갈등 구조와 썰렁한 유머가 빈틈을 채운다. 죽음에서 부활한 슈퍼맨과 저스티스 리그 멤버 사이의 갈등이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에이미 애덤스)의 등장으로 맥없이 해소되는 대목도 아쉽다. 가장 치명적인 오점은 악당 스테픈울프의 무대 장악력. 그의 존재감은 역대 DCEU 악당 중 가장 미미하다. 100% CG 캐릭터라는 점도 카리스마를 반감시키는 데 일조했다. 장래성 B+ 지금껏 우리는 DCEU 영화의 다양한 변주를 봐 왔다. '맨 오브 스틸'의 잠재력과 '배트맨 대 슈퍼맨'의 패착,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재앙도, '원더 우먼'의 화려한 부활도 목격했다. 조금 독하게 말하자면, '저스티스 리그'는 지난 사례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매번 실패의 원인을 강박적으로 쇄신하려던 태도가 오히려 역풍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저스티스 리그'는 스나이더 감독과 웨던 감독 중 누구의 것도 아닌, 어중간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탄생했다. 솔로 영화 대신 다수의 히어로를 한꺼번에 데뷔시키려던 DC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진지하게 재고해 볼 시기가 왔다. 제작자 찰스 로벤은 1년 전 촬영장에서 "영웅들이 힘을 합치는 행위가 어떻게 그들을 더 영웅답게 '향상(Elevation)'시킬지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저스티스 리그'를 통해 보여준 풍경은 작품의 '향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저스티스 리그' 이후 DCEU는 앞으로도 계속 팬들의 동의와 축복을 얻을 수 있을까. DC 히어로의 솔로 영화, 스핀오프 등 이토록 너른 우주를 팽창시키고 있건만, DC가 마블의 독주를 막아설 날은 쉬이 오지 않을 듯하다. 고석희 기자